흥미거리

퍼시픽림 관람 후기

Winterfall 2013. 7. 1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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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어제, 가족들과 퍼시픽림을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정에 없었던 일이었던데다 장마라 날은 눅눅하고 더웠기 때문에 땀이 질질 흘러서 어디 나가기 싫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사실 퍼시픽림을 기대하기는 했었습니다. 그런데 적의 명칭을 카이주라고 한다고해서 뭔가 이상해서 사전을 뒤져보니 역시나 괴수의 일본식 발음인 카이주라고 쓰는거였습니다. 거기에 일본 전범기마저 살짝 보여서 일빠 감독의 불편한 일본 찬양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보고싶지 않았었던거죠. 그런데 오랜만에 가족들이 다같이 영화를 보러 가는 상황인데다 볼만한 영화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 일본이 저지른 잘못까지 포장했는지 어디 보자 하는 찌질한 심리로 보게 되었죠.

 

결과적으로는 대만족이었습니다. 일본 어쩌고 그딴건 생각도 안날정도로 거대하고 둔중하고 강력한 로봇의 이종격투기 같은 강렬한 맨몸 액션을 시원하게 보여줬습니다. 스토리는 별로 할 말은 없습니다. 카이주와의 드리프트를 그렇게 뒤늦게야 생각하고 실행했다는것이나 예거를 만들정도의 기술력이면 위성 무기, 공대지 무기를 만들어 원거리에서 요격해서도 충분히 죽일 수 있었을텐데 라거나 그런 자잘한 의문이나 스토리에서 시간상 어딘가 개연성을 대충 덮은듯한 느낌들은 정말 강력하고 거대한 액션에 묻혀서 떠오를 틈도 없습니다. 정말 화끈하고 시원한 액션영화. 과거의 메카닉이나 괴수물에 열광했던 남자들, 혹은 덕후들의 로망들을 한군데 모아서 집합시켜놓은듯한 영화입니다. 정말 돈이 아깝지 않습니다. 여주인공 연기는 돈아까움.

 

근데 아쉬운점도 있습니다. 바로 표절 의혹과 관련된 문제죠. 에반게리온, 고지라, 건담 등등을 대놓고 가져다 쓴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퍼시픽림을 검색하면 표절했다고 욕부터 하고 시작하죠. 그 대부분은 에반게리온의 팬이거나 잘 아는사람, 고질라, 건담 등등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잘 아는 작품을 베꼈다고 갑론을박하거나 여기저기에서 베껴왔다고 싸우거나 난리도 아닙니다. 퍼시픽림이 표절이면 에바의 LCL용액도 어비스라는 영화의 표절이고 바다에서 적이 나타난다는건 심해에서 온 괴물이라는 여화의 표절에다 울트라맨의 표절인가 하는 나름 근거들을 가지고 싸우고 있지요.

 

그런데 이런 싸움은 정말 부질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실상 이건 거대 괴수와 일본 서브컬쳐에 바치는 오마주나 다름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죠. 엔딩 크레딧에 일본의 만화가, 애니메이션이나 특촬물 감독들의 이름이 들어가있을뿐더러, 크레딧의 마지막에는 괴수영화의 원조이자 특수효과의 대가 레이 해리하우젠과 고지라 시리즈를 만든 일본 괴수물의 아버지인 혼다 이시로에게 영화를 바친다고 써놓았습니다. 쉽게 말해 성공한 덕후가 만든 조공같은거라고 해야할까요? 그럼 표절도 아닌데 뭐가 아쉬웠는가 하면, 바로 일본 서브컬쳐들에게 바치는 오마주였다는거죠. 일본의 문화가 싫다는게 아니라, 일본만큼 해외에 영향을 주지 못한 우리의 서브컬쳐가 아쉬웠습니다. 그게 우리나라 작가들이 무능해서 그런게 아니었다는점이 아쉬웠던거죠. 정부에 탄압당하는 만화, 인식의 차이 등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으니 원인이 무엇이다라고는 말하기 어렵겠지만, 분명 우리나라 만화가들이, 지망생들이 무능해서 그런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퍼시픽림을 보는내내 부럽고 아쉬웠습니다. 대단히 애국자라서, 덕후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거 있지 않습니까? 아 저거 나도 잘할 수 있는데, 저거 나도 생각했던건데 하면서 아쉬워하는 그런 마음. 그냥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여간 퍼시픽림은 정말 재미있는 액션영화입니다. 좋은 영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속이 시원한 액션영화는 맞습니다. 거대한 로봇이 거대한 괴수와 굉음을 울리며 싸우는 장면은 꼭 극장에 가서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로봇 좋아하시는분들은 특히나 대만족 할거라고 봅니다. 트랜스포머가 세련된 멋을 보여줬다면, 퍼시픽림은 야생의 거친 멋을 보여줍니다. 괴수와의 싸움은 역시 주먹과 칼과 몽둥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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